김유정
갑부 집안이었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
1932년에는 고향 실레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하였다.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그뒤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김문집(金文輯)·이상(李箱) 등과 교분을 가지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그는 등단하던 해에 「금 따는 콩밭」·「떡」·「산골」·「만무방」·「봄봄」 등을 발표하였고, 그 이듬해인 1936년에 「산골 나그네」·「봄과 따라지」·「동백꽃」 등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에는 「땡볕」·「따라지」 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불과 2년 남짓한 작가생활을 통해서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소설을 남길 만큼 왕성한 창작의욕을 보였으나, 30세에 죽었다.
김유정의 소설은 그의 체험적 소재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고향 실레마을 사람들의 가난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생활을 그린 「봄봄」·「동백꽃」 등의 계열로서 그의 작가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일면이다.
다음은 그의 금광 체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민족항일기의 가난 속에서 일확천금의 꿈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생태를 그린 「노다지」·「금 따는 콩밭」 등의 계열,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한 한 작가인 자신의 생활을 투영시킨 「따라지」·「봄과 따라지」 등의 계열이 그것이다.
그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戱畫的)이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 게 특징이다.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순진한 모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어리숭한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다룬 것은 그의 애상적인 성격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만무방(김유정)의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촌 소설
* 성격 : 반어적, 비판적, 토속적
* 배경
① 시간 - 일제 강점기의 어느 가을날
② 공간 - 강원도 산골 마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식민지 농촌 사회의 가혹한 현실
* 특징
①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와 토속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함.
② 일제 강점기의 농민의 궁핍함을 반어적인 기법을 통해 표현함.
줄거리
응칠이는 농토도, 계집도, 집도 없는 뜨내기 홀몸이다. 방이 있대도 남의 곁방이요 잠은 새우잠이다. 꼭 해야만 할 일도 없지만 아득바득 일거리를 찾으려 들지도 않는다. 없으니까 굶고, 마냥 죽치고만 있을 수도 없어 산 속으로 송이를 캐러 나왔다.
마침 송이 몇 개를 땄다. 한 꾸러미 찬다면 장에 가서 팔 텐데, 우선은 배고픈 김에 큰놈을 제대로 씻지도 않고 우적우적 먹어 삼킨다. 무덤 곁으로 나왔더니 암탉 한 마리가 맴돌기에 잡아서 생살로 뜯어먹었다.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대장장이 성팔이를 만났다.
응칠이는 정처 없이 떠돌던 끝에 아우가 살고 있는 마을에 흘러든 것이다. 아우는 응고개의 다락 논을 빌려 부치는데, 벼농사가 수확이 시원찮은데 그마저 도적이 들어 밤사이에 벼포기를 잘라 간단다. 성팔이는 응칠이를 의심하는 눈치이고, 응칠이 또한 성팔이가 뒤가 구리니 얼레발을 치는 게 아닌가 살핀다.
본래 응칠이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빚이 늘어났으므로 살림을 더 지탱할 길이 없어, 보잘것없는 세간이나마 짚단까지 모아서 품목을 적고는 글 한 장을 남겼다.
'……죄진 몸이라 도망하니 그대들은 아예 싸울 게 아니고 서로 의논하여 억울치 않도록 분배하여 가기 바라노라.' 문을 걸어 닫고, 울타리 밑구멍으로 세 식구가 빠져나왔더랬다.
밥을 빌어먹으며 돌아다녔지만 눈보라 속에 어린것의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각자 흩어져 제 살길을 찾자고 헤어지고 말았다. 이후, 응칠이는 도박과 절도로 전과 4범이란 딱지를 달게 되었다. 아우를 찾아온 것은 그에게 빌붙고자 해서가 아니라 워낙 핍진한 끝에 혈족이 그리웠던 탓이다.
아우 응오는 착실한 농군이었지만 벼를 털어 봤자 제 손에 떨어지는 게 하나 없을 것이기에 벼 벨 생각을 않는다. 그러니까 지주와 장리를 놓은 김 참판의 독촉이 어지간하다. 하지만 응오는 "계집이 다 죽게 됐는데 벼는 다 뭐지유우" 하는 말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쓸 만한 벼포기는 모가지가 뎅겅뎅겅 잘려나가고 있는 거다.
응칠이는 주막집에 들러 막걸리 잔을 송이와 바꿔 마셨다. 불쾌한 얼굴로 아우네 집에 들려 송장같이 마른 아우의 처를 본다. 아우는 아내를 얻기 위해 꼬박 3년간이나 머슴을 살았는데, 단 두 해를 못 살고 이 꼴이다. 수심에 가득 찬 응오는, 형이 성팔이 이름을 들먹여도 쓰다 달다 대답이 없다.
밤에 담배를 한 봉 살까 해서 나왔다가 높은 산 고랑에 불빛이 펀듯 하는 걸 용케 목격했다. 바위틈에 굴이 하나 있는데, 마을 노름꾼들이 숨어서 화투짝을 돌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노름이라면 이골이 난 터였다.
여럿 중에 재성이와, 며칠 전에 제 계집을 팔아 영동엘 가서 장사에 나서겠다던 기호도 끼어 있었다. 그는 기호를 불러내 돈 2원을 꿔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따면 그것을 반 나누어주겠다 하자 기호는 쭈뼛쭈뼛 돈을 빌려준다. 응칠이는 9원 80전을 땄다.
기호한테 5원을 주고 나오는데, 재성이가 따라 나와 눈물까지 글썽이며 동정을 구하기에 2원을 떼 주었다. 혼자 걸어 서낭당이 있는 곳까지 왔다. 뭔가 바스락바스락하기에 등에 식은땀이 솟는다. 게다가 이슬까지 내려, 공포도 공포려니와 냉기로 하여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의 걸음은 어느새 아우가 벼농사를 짓는 응고개 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도둑을 기필코 잡아낼 작정이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참에, 과연 논둑에 희끄무레한 사람 형상이 얼씬거린다.
성필일까, 재성일까…… 응칠이는 몽둥이를 찾아들고 소나무에 붙어 서서 도적이 벼를 훔쳐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한 사내가 얼굴을 수건이지 헝겊인지로 가리고 봇짐을 챙겨든 걸 보고는 몽둥이를 휘둘러 허리께를 내려조졌다. 어이쿠쿠 하며 복면한 사내가 나뒹군다.
그런데 알고 본즉 그 자는 아우 응오였다. 자기 농사를 자기가 훔쳐먹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참혹하다. 응칠이는 홧김에 또 아우의 앞정강이와 등을 매타작했다. 그래놓고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어, 아우를 일으켜 등에 업고는 한숨을 쉬어가며 돌아온다.
등장 인물
* 응칠 : 도박과 절도를 일삼으며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는 만무방이다. 원래는 성실한 농부였지만 쌓여 가는 빚 때문에 떠돌이 신세가 된다. 동생에 대한 형제애를 가지고 있으며, 적극적인 현실 대응방식을 보여준다.
* 응오 : 순박하고 성실한 농민이지만, 열심히 농사지은 벼를 수확해 봤자 모든 걸 지주와 빚쟁이에게 빼앗길 처지이고, 아내까지 병을 얻은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 논의 벼를 수확하지 않고, 이를 몰래 훔치는 소극적 대응 방식을 보여 준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응칠과 응오 형제의 삶을 통해 일제 강점기 농촌 사회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성실한 농군 응오는 농사를 지어 봤자 오히려 빚만 늘게 될 것을 알고 추수를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밤에 몰래 자기 논의 벼를 도둑질한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은 식민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폭로하고 있으며 당시 소작인의 고충과 빈곤을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는 성실한 농민이었던 응칠, 응오 형제가 변해 가는 모습을 주목해야 한다. 응칠은 원래 성실한 농민이었지만,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박과 절도를 일삼는 만무방이 되고 만다. 응오 역시 순박하고 성실한 농민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가혹한 지주의 착취에 맞서 추수를 거부하고, 급기야 자기 논의 벼를 몰래 도둑질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식민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작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해학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작품은 추수를 하여도 아무런 수확도 돌아가지 않는 빈한한 소작 농민이 끝내 제 논의 벼를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을 반어적(反語的)으로 제시한 것이다. 도지(賭地)·장리(長利)·색조(色租: 세곡이나 환곡을 받을 때 견본으로 받던 곡식)·세금·부채 등의 가혹한 식민지 경제체제의 압력 때문에 살아나가기 힘든 두 형제의 부랑하는 삶을 그리고 있다. 또한 생산과 수확을 거부하는 각기 다른 대항 양식을 중심으로 하여, 아울러 노동보다는 도박판에 뛰어드는 농촌 청년들의 사행적(射倖的) 행태가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식민지 농촌에 가해지는 제도의 가혹함과 그 피해의 관계를 밝히는 한편, 제도가 야기하고 있는 순진한 인간의 기본적인 반항과 불가피한 생존 양태의 문제, 농촌 청년들의 불건전한 일확천금의 꿈 등을 잘 그려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같은 시대에 많은 작품들이 지니고 있던 계급투쟁적인 저항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반어로써 처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목적론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으면서도 당대 현실을 탁월하게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해설
1) ‘만무방’의 의미
‘만무방’이란 원래 ‘염치없이 막되어 먹은 인간’이라는 뜻으로, 이 작품에서는 빚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도박과 도둑질을 일삼는 응칠이의 부랑(浮浪)하는 삶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성실한 농부로 알려진 응오 역시 자신의 벼를 훔친다는 점에서 만무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응오의 일탈적 행동은 다소 우스꽝스럽고 소극적인 저항이지만 그 역시 현실의 절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응칠의 행동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1930년대는 농촌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만무방’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만무방’은 모순된 구조의 사회가 빚어낸 인간형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반어적, 냉소적인 말인 것이다.
2) 작품에 드러난 작가의 현실 대응 방식
이 작품은 1935년 7월에 연재된 작품으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일제 강점기 궁핍한 농촌 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당대의 농민들은 지주와 일제, 고리대금업자의 가혹한 수탈로 빚만 늘어나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 처해 있었다. 이 작품에서 ‘모범 농군(응오)=도둑’, ‘만무방=응칠=응오’ 라는 장치는 개인의 성격이나 도덕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개인의 행동을 결정지을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작가의 이러한 현실 인식은 ‘금따는 콩밭’, ‘떡’과 같은 다른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글(hwp)과 pdf 파일 같은 내용이니 편하신 걸로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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