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아파트의 정기적인 소독 날이 되어 우리는 쫓겨나다시피 바깥으로 나왔다. 연출가 김 형과 배우 김 형 그리고 나. 말이 연출가고 배우지 우리는 그 방면으로는 별로 빛을 못 보고 앙앙불락하고 있는 처지들이었다.
우리들은 새로운 동네에 이사와서 서로 끼리끼리임을 알아보고 곧 죽이 맞아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활을 꾸려가는지에 대한 의문만은 무슨 금기처럼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소독약의 약내가 다 사라지자면 오후 한나절이 걸릴 것이고 그것은 그때까지 우리가 사람들의 이목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음을 의미했다.
김 형은 웃을 때 칠면조 소리를 내고 웃곤 하였는데 우리들의 화제는 칠면조에서 월남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월남 이야기가 아니라 원숭이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든 월남전 참전용사인 배우 김 형은 월남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었고 월남 이야기에 원숭이 이야기가 끼어들었다.
월남에서는 원숭이를 먹는다는데 우리가 개를 먹는 것이 뭐 그리 야단스러우냐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그와 함께 원숭이 요리의 이야기가 등장하면 늘 이야기되듯이 산 원숭이의 두개골을 빠개 골을 빼먹는다는 방법이 입에 오르내렸다. 망중한의 이런 이야기 가운데 나는 며칠 전에 신문에 조그맣게 났던 한 기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화성에서 50만 년 전에 이룩된 것으로 보이는 어떤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그 흔적이 홰를 타고 앉아 광활한 우주 공간을 응시하는 거대한 원숭이의 얼굴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나에게 그 원숭이의 모습이 다가왔다. 홰를 타고 앉아 광활한 우주 공간을 응시하는 거대한 원숭이.
나는 한 마리의 작은 원숭이를 눈앞에 그리고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 때, 의붓아버지를 따라 곡마단의 천막 앞에 서 있었던 기억이 한 마리의 작은 원숭이를 떠올리게끔 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의붓아버지는 나와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한 의도로 곡마단 구경을 시켜 주셨다. 그러나 나는 이미 몇 번인가 곡마단을 구경한 뒤였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나는 목줄에 매인 작은 원숭이가 출입구 옆 가로 막대를 홰로 하여 오도카니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 원숭이에게서 동류의식을 느꼈었다고 여겨진다.
나는 원숭이에게 몇 발짝을 다가갔다. 불쌍한 원숭아, 네 아빠 엄마는 어디 있니. 그러나 원숭이는 얼굴을 반짝 들고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우호적임을 나타내는 어떤 시늉을 하였지만, 그 순간 원숭이의 팔이 휘익 뻗쳐오더니 내 얼굴을 스칠락 말락 하여 스웨터를 옭아쥐었다.
나는 겁에 질린 채 어쩔 줄을 몰랐고, 누군가가 와서 원숭이를 때려 팔을 거두게 한 뒤에서야 나는 그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 때, 나는 자신이 아무리 외로운 상태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고 함께 나누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원숭이에게서 배웠다.
나는 오늘 두 사람에게 어디라도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뜻밖에도 나는 원숭이 구경이나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 나는 그따위 계획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장난처럼 나온 내 말에 왠지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원숭이 구경이나 할까’라고 중얼거린 것은 어디 사람 구경이라도 하러 가자는 뜻과 다름없었다. 원숭이와 사람은 너무 닮았다. 그래서 원숭이는 애초부터 재수 없다는 구설수를 뒤에 달고 다니는 게 아닐까.
나는 강한 유혹과 함께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저쪽 변두리 도일장 같은 데 가면 원숭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배우 김 형은 나에게 도일장에 대해 물었다. 나는 지난 가을에 우연히 그곳에 가서 장터 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예전 장터 풍경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곳을 구경하다가 장터 한구석에서 새로 공연을 벌이는 약장수 패거리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원숭이를 봤던 기억은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원숭이가 있었다고 나 자신에게 거듭 확인을 시키고 있었다. 약장수들이 보여주는 쇼는 천편일률적이기는 했으나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그 옆에서 오래 맴돌았었다. 거기에 정말 원숭이가 있었는지 아슴프레했지만, 있었다고 믿어 보고 싶었다.
나는 다시, 사람들에게 원숭이 구경갈 것을 재촉했다. 연출가 김 형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나는 배우 김 형을 바라보며 동조를 구했다. 나는 배우 김 형을 잡아끌었다. 손짓하는 연출가 김 형을 뒤에 남겨 놓고 우리는 무슨 굉장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들처럼 공원을 빠져나가 택시를 탔다. 원숭이는 나에게 훨씬 구체적인 과제로 다가왔다. 홰를 타고 앉아 우주공간을 응시하는 거대한 원숭이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 마리의 원숭이. 작지만 결코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원숭이.
김 형과 내가 <부처님 오신 날>의 플래카드로부터 어떤 생각을 연기(緣起)하는 동안 택시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마침 장날이어서 원숭이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그날따라 도일장은 너무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런 정황이 원숭이가 있겠다는 기대감을 급속히 사그라들게 하고는 있었으나 우리는 오토바이 상점을 지나 약장수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벌써부터 원숭이는 없다고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원숭이 보기를 포기하고 막걸리로 목이나 축일까 하는 생각에 국수집으로 향했다. 사실 따져 보면 원숭이는 아무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온 것이 무엇인가로부터 된통 당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포장 안은 후끈거리기조차 했다. 아주머니가 막걸리 통을 흔들어 내놓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아주머니께 혹시 여기서 원숭이를 구경할 만한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더니 언덕 너머 월곶 쪽으로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곳에 원숭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나는 이제는 그것에 아무런 하등 흥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배우 김 형은 달랐다. 그는 나에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원숭이나 보고 가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일찍 집으로 가봤자 아내와 부딪히기밖에 더 하겠느냐는 생각에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나는 그 순간 김 형이 돈키호테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해도 어느 정도 기울었을 때, 우리는 원숭이라는 이상의,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바야흐로 서해안의 황량한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언덕을 넘자 멀리 높다란 돌산이 나타났다. 언덕 밑에서부터 돌산 밑까지는 버려진 갯벌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황량한 갯벌을 지나 염전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동네 어귀로 들어섰지만 사람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막막해졌다. 그때였다. 낡은 작업복을 걸친, 키가 작은 사내가 우리를 불렀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아 약장수…, 원숭이…라고 낮게 말했다. 그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여긴 원숭이 따윈 없다며 화를 냈다. 그리고는 일몰 후에 이곳에서 어정거리다간 간첩이 되어 총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대꾸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그와 나는 황급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내가 김 형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가 원숭이로 변해 있었다. 나는 그가 눈치를 챌까 봐 조심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그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내가 원숭이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서로가 상대방을 원숭이로 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김 형은 다시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만약 우리가 서로에게 원숭이가 되어야 했던 까닭을 알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저, 홰를 타고 앉아 광활한 우주 공간을 응시하는 거대한 원숭이뿐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앞을 향해 걸었다. 우리들은 극도의 공포에 쪼그라진 원숭이 얼굴을 하고 어둠 속을 허둥거리며, 그토록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일상을 향하여 거의 사력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다.
윤후명
본명 윤상규(尹常奎). 1946년 1월 17일 강원도 강릉 태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신춘시』,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제3회 녹원문학상과 제18회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77년 발간한 시집 『명궁』은 ‘광야’, ‘황사’, ‘벌판’ 등 황폐한 세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주조로 한 시 작품들을 싣고 있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된 이후 소설창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높새의 집」(1979), 「돈황의 사랑」(1982),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1984), 「섬」(1985)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은 대체로 고전적‧원형적 구성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닫혀진 세계에의 입사-성숙-귀환의 과정으로서 자아회복의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정체모를 상실감, 존재의 불안감, 고독, 절망, 결핍 등을 작가의 특유한 감성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집으로 『돈황의 사랑』(1983), 『부활하는 새』(1985),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1987), 『원숭이는 없다』(1989), 『협궤열차』(1992),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1994), 『가장 멀리 있는 나』(2001), 『새의 말을 듣다』(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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