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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소설 전문 줄거리 해설/2021 수능특강

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줄거리/해설

 

 

현기영

민족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1941년 제주 태생. 오현고를 거쳐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유년기적 체험을 바탕으로 제주도 공비토벌 사건을 다룬 「순이삼촌」(1978),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해룡이야기」(1979) 등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제주도 4‧3사건을 소재로 하여 역사의 왜곡된 구조, 정치권력과 이념에 희생된 제주 민중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고발정신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그의 문학은 이념문제를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민중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고, 사실주의적 인식을 기반으로 현실을 철저히 해부하고 분석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집으로는 『순이삼촌』(1979), 『변방에 우짖는 새』(1983), 『아스팔트』(1986), 『바람 타는 섬』(1989), 『젊은 대지를 위하여』(1989), 『위기의 사내』(1991), 『마지막 테우리』(1994),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 『누란』(2009) 등이 있다.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다룬 깊이 있는 작품을 써왔고, 중후하고 개성 있는 문체로 오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줄거리*

이 소설은 전체 17장으로 이루어졌다. 제1장은 제주 백성들의 수난사를 그려내면서 유배문화로 인식되어온 제주도에 대한 통념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제2장과 제3장은 제주민란의 증인과 운양일행의 유배장면을 다루었다. 제4,5,6,7장에서는 남학당(南學黨)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방성칠의 난을 다루었으며, 제8장은 방성칠 난의 후일담을 그렸다. 제9장에서 제16장까지는 이재수의 난을 다루었고, 제17장은 그 후일담이다. 다음은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이재수 난의 줄거리이다.

 

구한말 을미사변으로 인해 제주도로 귀양 온 운양 김윤식은 제주도군수의 도움으로 보석되어 민가에 기탁하게 된다. 그즈음 대정군의 화전민들이 제주도목사 이병휘의 수탈에 견디다 못해 80난 노인 방성칠을 소두로 하여 읍성에 몰려가 목사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정을 약속하고 백성들을 돌려보낸 목사는 비밀리에 조천장수 60여 명을 모아 방성칠을 비롯한 주동자들을 처단하려다가 발각되는데, 이에 흥분한 백성들은 방성칠을 장두로 하여 민란을 일으킨다. 민란이 성공한 듯하자 방성칠은 <정감록>을 근거로 자신을 내세우며 역성혁명을 꾀하는데, 적객 중의 몇몇이 창의군을 조직했으나, 민당의 습격에 힘없이 흩어져 버린다. 민당 내부의 분열의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김낙영과 최형순이 방성칠을 제거할 음모를 세우고, 방성칠과 함께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갈 것을 꾀하는 한편으로 민당들 사이에 방성칠이 일본에 복속할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이때를 틈타 홍정의, 채구석, 송대정 등이 주도하여 창의군을 모아 민당을 습격하니 민당은 크게 패해 흩어지고 민란의 세 장두 방성칠, 강벽곡, 정산마는 효수된다.


관민란의 문책으로 전직 관리들이 파직되고 목사와 관리들이 새로 부임하였지만, 탐학과 늑탈은 계속되고, 프랑스 신부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일부 천주교인들의 행패가 심해지고, 설상가상으로 조정에서 파견한 봉세관(捧稅官)인 강봉헌의 무자비한 착취 때문에 민중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진다. 특히 봉세관의 마름으로 천주교(성교)도들이 고용되면서 이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유생과 토호들이 주축이 되어 천주교의 폐단을 고치라는 반기독교 격문을 내걸고 평화적 시위를 벌인다.

한논교당의 행패를 보다 못해 격문을 붙였다가 흥분한 교인들에게 습격당해 노인이 죽고 만 사건 이후 제주도 각 지역에는 교인과 봉세관을 성토하는 통문이 나돌기 시작하고 민심은 더욱 뒤숭숭해졌다. 당황한 교당측에서 교인을 주성 안으로 모아 무장시키니, 민심은 슬며시 가라앉고 말았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교인들의 행패에 회의하던 유생 강우백은 배교자가 되어, 같은 고을 서비들과 자위단을 결성하고 백성들을 모았다. 프랑스 신부들은 총으로 무장시킨 교인들을 이끌고 새벽에 민당을 기습하여 상무사 유생들과 민당의 간부들을 사로잡아 관가에 넘겨준다. 흩어진 민당은 다시 강우백과 이재수를 각각 동진과 서진 장두로 하여 전열을 재정비하고 (제)주성으로 진격하였다. 관노 출신의 이재수가 민란의 지도자로 나서자, 평민뿐만 아니라 천민들까지도 가세하게 된다.

 

민당과 교인들 사이에 접전이 계속되면서 인명피해는 늘어만 가는데, 민당이 성밖 교인가족들과 포로들을 처형하자, 주성 안의 교인 중 수 백 명이 도망을 친다. 이에 교인들은 민당과 강화를 꾀할 목적으로 포로로 붙잡았던 상무사 유생과 민병들을 돌려보내나, 교인측에 인명피해를 입은 민당들의 교인 처형은 나날이 잔인해지고, 이에 따라 주성 안의 민심도 흉흉해져 교인들은 양식을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마침내 주성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문을 개방하고 입성한 민당은 교인을 무참히 처단하고 교당을 파괴한 후, 교인 잔당 체포를 위해 섬 일주에 나서고, 이재수는 숨어 있던 교인들 700여 명을 살해하고 승리의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유생과 토호가 지휘하는 동진과 민중이 주축이 된 서진 사이에 잠재된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민당은 분열된다. 뒤늦게 법국(프랑스) 군함 알루에뜨호와 쉬르프리스호가 당도한다. 법국군함편으로 새목사 이재호가 도임하는데, 민란의 원흉이던 봉세관 강봉헌이 대정군수가 되어 함께 돌아오고 대정군수 채구석은 민란의 책임을 물어 면직된다. 숨어있던 교인들이 모여들고, 섬 순력 중이던 동서 양진은 의군을 모으는 통문을 띄운다. 세폐와 교폐의 혁파와 난민의 면죄를 요구하는 민당들과 관군이 대립하고, 제주도목사는 중앙에 증병을 요청한다. 

 

곧이어 현익호로 강화병과 진위대, 순검과 함께 찰리사의 신임 군수, 대정군수, 대대장이 입도하는데, 이들은 모든 세폐(경제적 착취)와 교폐를 혁파한다는 왕의 윤음을 선포하고, 이에 민당들은 해산한다. 운양을 비롯한 적객들은 각기 다른 섬으로 이배되고, 민란의 원인제공자와 주동자들이 서울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민란의 원흉들은 무죄석방되고, 오대현, 강우백, 이재수 세 장두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법국공사가 정부에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중, 채구석의 석방을 조건으로 제주도민들이 교인 영장지를 제공하고, 배상금을 물기로 자청하면서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1905년 운양 김윤식은 특사로 귀양이 풀렸으며, 나인영은 나철로 개명하고 대종교를 창시한 후 3.1운동 직전 나라와 종교를 위해 죽노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운양은 합병이후 귀족의 작위를 받았으나, 3.1운동이 발발하자 독립청원서를 내었다가 실형을 선고받고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이해와 감상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월간잡지 《마당》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1983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조선왕조 말기에 제주도에서 3년 간격으로 발생한 방성칠((房星七)의 난(1898)과 이재수(李在守)의 난(1901)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제주도 출신인 현기영은 당시 제주도에 귀양온 김윤식(金允植)의 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를 근본 사료로 삼고 천주교측의 자료와 제주 촌로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최대한 배제한 채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거납(拒納)운동으로 시작된 민란이 어째서 반봉건적 의거(義擧)·천주교 박해(迫害)로 발전되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성격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이 소설은 국내외의 여러 가지 시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그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이재수의 난과 방성칠의 난을 사료에 근거한 집요한 천착으로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사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역사학계에서도 거의 다루지 못했던 방성칠란과 신축제주항쟁에 대한 재조명이 이 소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해설*

1) 작가가 민란이라는 소재를 택한 이유

'언론이 없는 백성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이며,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 상황 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작가의 민란에 대한 해석이다. 

 

작품이 발표된 1980년대 초반은 바야흐로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시발로 한 전두환 정권의 비민주적인 횡포가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이때 우회적 언론이라 할 수 있는 문학계 또한 집중적인 단속의 대상이었고, 문인들의 창작과 발표에 심각한 제재가 가해지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를 맞추어 "변방에 우짖는 새"가 연재되고 발표되었으니, 작품에서 복원한 민란, 다시 말해 민중의 주체적인 봉기는 탄압정권에 대한 간접적인 불복이자 항거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정권의 폭압정치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의 전사(史;당면한 역사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하여 쓰는,  이전의 역사)로서의 의미를 노정한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을 소재로 취하여 복원해낸 이 작품을 두고 한국 현대문학에서 역사소설의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2) 민중적 리얼리즘의 성취

"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 친일온건 개화파 운양 김윤식의 일기인 "속음청사"에 상당부분 의거하고 있다. 중앙정객의 눈으로 변방의 생활, 특히 민란을 기록했음을 염두에 둔다면 작품의 내용은 기득권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구한말 탐관들의 부패와 학정, 천주교인들의 패악으로 인해 야기된 민란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작가는 김윤식의 일기라는 기득권의 일지를 바탕으로 하여 사실을 복원하면서도 민중사관을 견지하고 있어 이례적이다.

 

김윤식이 취한 상층의 시각과 작가가 견지한 하층(민중)의 시각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민란발생의 필연적 배경, 즉 시대상이 총체적으로 묘사되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민란이라는 사건의 역사적 필연성이 횡포와 수탈에 시달리는 제주도민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통하여 충분히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에 "변방에 우짖는 새"는 훌륭한 역사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인 민중성의 구현이라는 원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줄거리와 해설은 논문 "현기영 소설 연구/김신영"를 참고 했음을 밝힙니다. (양이 너무 많아서 타이핑 치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전문은 없습니다!***